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을 시작하게 된 지 곧 2년이 다 되어갑니다.

동시에 블로그를 시작한지도 2년이 되어가는군요.

아직 한참 모자란 주니어지만, 지난 2년간 의미있는 사건들을 제 입맛대로 회고해 본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

 

 

스스로 발품 팔아 취업까지

 

코로나 이후 개발 취업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인턴 공고는 눈에 띄게 줄었고, 남아있는 자리마저 경쟁률은 하늘을 찔렀다. 자기소개서를 수십 번 쓰고 면접을 보고, 또 떨어지는 일이 일상이 됐다.

 

지원서 불합격이라는 결과에 무감각해질 무렵, 문득 생각이 들었다. 같은 경험을 계속 반복해서 풀어내는 자소서가 문득 합격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긴 힘들 거라고. 내가 원하는 일이든 아니든,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일단 지금의 내 경험에 한 층이라도 더 쌓을 일이 있는 현장에서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 발품을 팔아보기로 했다.

 

대학 시절 참여했던 여러 AI 경진대회에서, 여러 관계자들과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기업 대표님들의 명함이 있었다. 몇몇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냈을 때, 그들은 "언제 한번 연락줘요"라는 말을 한 게 생각났다. 당시엔 그저 예의상 하는 말로만 여겼지만, 지금의 막막한 상황에서 그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용기를 내어 명함 위의 이메일 주소로 정성껏 메일을 보냈다. 내 열정과 관심사,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담았다. 자소서처럼 포장된 글 보다는, 내가 왜 그들의 회사와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지 진심을 담아 썼다.

 

기대 반, 체념 반으로 보낸 메일들 중 딱 한 곳에서 답장이 왔다. 천안의 작은 AI 스타트업. 대표님은 메일에서 함께 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며 만남을 제안하셨다. 바로 열차를 타고 천안역에서 우리는 만나게 되었고, 나는 첫 AI 개발자로서의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내가 명함을 꺼내보지 않았더라면, 용기내어 연락해보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스스로 발품을 팔아 기회를 얻어간 나 자신에게 만족스러웠고, 당시 경진대회를 열심히 하고 다녔던 과거의 나에게 참 고마웠다. 이 사건은 종종 정해진 길이 아니더라도, 전통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주곤 한다.

 

 

사수가 없어요, 난 무엇을 보며 자라날 수 있나?

상상과 현실

 

첫 출근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공간에 혼자 던져진 기분이었다. 온보딩이나 인수인계 같은 과정은 당연히 없었다. 26살이었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등병이 내무반에 혼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첫날부터 외부 미팅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게 무슨 미팅인지도 전혀 모른 채... 혼란 그 자체였다.

 

후에 깨닫게 된 현실은, 나를 이끌어줄 시니어 개발자나 사수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냥 혼자 일을 맡아 해나가야 하는 식이었다. 내가 생각한 신입의 모습은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로부터 작은 일을 도맡아 하고, 적어도 한두 달을 뚝딱거리면서 그렇게 온실 속 화초처럼 커리어가 시작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인 건,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사수가 없어서 어떤 점이 힘들었지' 생각하고 있는데, 굳이 글로 남길 만큼 힘들었던 점이 없는 것 같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사수가 없어도 혼자 잘 찾아보고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사수가 없었다고 보기도 애매하다. 구글링으로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 해결 상황을 풀어놓은 글을 볼 수가 있었고, ChatGPT가 그 누구보다 쉽고 정확하게 알려줬기 때문이다. 스택오버플로우에서는 내가 겪는 문제를 이미 누군가 물어봤고, 유튜브에는 초보자도 이해할 수 있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튜토리얼이 넘쳐났다.

 

시니어의 부재는 오히려 내게 독립성을 키워주었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해결책을 찾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이 자연스레 길러졌다.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은 때로는 스트레스였지만, 동시에 더 넓은 시야로 문제를 바라보게 해 주었다. 이렇게 보면 나의 사수는 인터넷 세상 전체였다. 특정 한 명의 사수가 있었다면 그 사람의 관점과 방식만 배웠을 테지만, 내게는 수백, 수천 명의 다양한 '사수'들이 있었다. 이 밖에도 또 성장에 도움이 되었던 방법들이 있었는데, 다음 이야기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 싶다.

 

 

 

 

“함께”의 가치는 상당했다 (feat. 글또)

 

나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만났을 때 얻게 되는 에너지가 상당하다는 것을 오랜 세월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서울에 아주 아주 많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특별할 일 없는 주말만 되면 천안에서 서울로 향했다.

 

나에게는 "글또"라는 커뮤니티가 있다. '글 쓰는 또라이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거창한 의미의 커뮤니티지만, 내게는 단순한 모임 이상의 가치를 지닌 만남의 장소다. 여기서는 매주 재미난 일들이 일어난다.

 

금요일만 되면 단체 채팅방에 알림이 울린다. "이번 주 주말에 강남에서 함께 코딩하실 분~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요~" 하는 모집 글이 올라온다. 혹은 "요즘 RAG를 배우고 있는데, 이 주제로 같이 이야기 나누실 분" 하며 특정 기술에 대해 수다를 떨자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딱 좋아하는 분위기다. 나는 이런 사람들과 만나면서 항상 좋은 에너지를 얻어갔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한 가지 예로 2년 전부터 기술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나 혼자서는 절대 꾸준히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글또 멤버들과 함께 만나 서로 의지를 다잡고, 때로는 서로의 글을 리뷰해 주며 꾸준히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덕분에 내 블로그 글의 조회수는 작지만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나는 이 수치가 단순한 글의 조회수라기보다, 함께하면서 성장한 수치라고 여기고 싶다. 

 

지난 24개월간 조회수 그래프

 

이처럼, 물리적으로는 혼자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수십 명의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셈이다. 천안의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도 서울의 대기업,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함께'의 가치다.

 

 

 

 

타인의 장점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말씀

 

대표님과 외부 미팅을 갈 때면 대표님이 장시간 운전을 하고, 그 속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중 기억에 깊이 남는 한마디가 있다. “타인의 장점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라.”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은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누군가 미워질 때, 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보려고 한다. 확실한 건 누구에게나 분명 장점은 존재한다. 일 처리 능력은 부족하지만 소통에 뛰어나거나, 말투가 거칠어도 깊은 통찰력이 있듯, 장점을 보려는 안목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보인다. 사람에 대해서 장점에 집중하면 미움은 사라지고 오히려 나의 약점을 보완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마치 메타몽처럼 좋아 보이는 것들을 내 것으로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대표님에겐 별 뜻 없이 흘린 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삶의 태도를 바꾸는 소중한 조언이 되었다. 타인의 장점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 결국 내게 가장 큰 이득이란 걸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느낀다.

 

 

 

Generalist냐 Specialist냐, 고것이 문제로다

 

지금 회사에는 디자인이나 기획을 전담하는 사람이 따로 없다. 개발자가 직접 디자인도 하고, 기획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르게 보면, 개발자지만 디자인과 기획까지 시도해 볼 기회가 있는 환경이다.

 

덕분에 요즘은 개발 외의 영역을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다. 회사 프로젝트의 UI/UX를 직접 설계하면서, 평생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던 피그마를 만져보고 각종 UI 사례들도 조사해보고 있다. 사실 원래부터 시각적인 요소와 유저 행동에 관심이 있어 디자인을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기획에도 자주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회사에는 경험 많은 기획자 한 분이 계신데, 올해 초부터 그분과 함께 프로덕트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배울 게 정말 많은 분이라서 하루 종일 골머리를 싸매도 의미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Generalist와 Specialist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사실 이 문제는 누구에게나 난제처럼 따라다니는 고민일 것이다. Generalist는 넓은 영역을 다루지만 깊이가 얕을 수 있고, Specialist는 한 분야에 깊게 파고들 수 있지만 대신 범위가 좁아질 수 있다. 장단점이 명확하고, 정답이 없다는 것도 확실하다. 다만 나의 정답은 어쩌면 Generalist 쪽에 가까운 듯하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영역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도 있지만, 지금 같은 생성 AI의 시대에 이런 성향이 더 잘 활용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차피 세상은 지금 반쯤 미쳐 있는 것 같다(?) AI가 웬만한 그림은 사람보다 잘 그리고, 글도 더 잘 쓰고, 심지어 코딩도 더 잘해준다. 이미 기존의 틀은 충분히 깨졌고, 앞으로 더 극단적으로 변할 것 같다. 이런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불안감에 머뭇거리며 행동이 뒤처지고 싶지는 않다. 그냥 정신을 반쯤 내려놓고 지금 해볼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즐기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나만의 답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나만의 의미부여가 필요해

위의 모든 이야기는 사실 지방의 작은 기업에 다니는 개발자, 14글자로 간단히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 속엔 예상치 못했던 도전, 용기 내어 만든 기회,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특별한 만남까지 꽤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일지 몰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의미부여에 따라 충분히 특별해질 수 있다는 걸 나는 이제 확신한다. 결국 삶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동일한 상황이라도 자신만의 색깔로 멋지게 의미 부여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2025년의 첫 분기가 벌써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의 남은 시간들도 나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찾아가며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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